
① 김정은 세습과 권력지형 변화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직전과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 집권 직후 등 두 차례에 걸쳐 10년 가까이 평양에서 북한의 권력지형 변화를 직접 목격했던 토마스 쉐퍼 북한 주재 전 독일 대사로부터 듣는 [RFA 특집, 북한 통치체제의 실상]
토마스 쉐퍼 (Thomas Schäfer) 전 북한 주재 독일 대사는 김정일 국방위원장 집권 말기(2007-2010년)와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 집권 초반(2013-2018년)을 평양에서 보낸 특별한 이력의 소유자입니다. 8년 가까이 평양에서 지내며 급변하는 북한의 정치지형을 직접 지켜봤던 그에게 평양에서 일어난, 강건파와 온건파 간 끊임없는 권력투쟁과 이를 토대로 이뤄진 권력세습은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변하지 않는 도시’ 평양에서 명확했던 한가지 변화는 권력의 변화였습니다.
[토마스 쉐퍼] 2008년 여름,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뇌졸중이 있었고 신체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약화된 상태였습니다.
2011년 김정일 사망 후, 우리는 또 다른 북한의 정치적 변화를 봅니다.
10년 가까이 외국인으로서 북한을 직접 경험했던 쉐퍼 전 대사는 권력지형의 변화를 제외하면 주민들의 일상 등 사회, 경제적 측면에서 달라진 점이 거의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토마스 쉐퍼] 그들은 여전히 빈곤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북한 주민들의 생활 측면을 살펴봐도 많은 변화는 없었다고 말하고 싶네요. 정권은 여전히 주민들을 억압하며 많은 제한을 가하고 있습니다. 아주 소수의 물질적인 생활수준이 나아진 점을 제외하면 일반적으로 많은 것이 변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네요.
“북한, 김정은 단일 체재 아냐”
서방 대사로 북한 내 고위 인사들과 두루 교류하면서 그가 느낀 북한의 정치체제는 뜻밖입니다. 외부에 알려진 것처럼 북한이 1인 지배체제로 김정은 총비서가 ‘절대적인 힘’을 휘두르는 권력자가 아니라고 그는 지적합니다.
북한이 1인 지배체제가 아닌 김일성 주석 시절 때부터 함께해온 아주 소수의 최상위 엘리트 계층으로 이뤄진 집단에 의해 사실상 집단 지도체제(collective leaderships)로 통치되고 있다는 겁니다.
[토마스 쉐퍼] 저는, 북한이 아주 작은 집단에 의해 통치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집단은 당 내 안보 관련 책임자들로 구성돼 있습니다. 이들은 소수로 이뤄진 가족 구성원인데, 김일성 (주석) 시기부터 함께 해 온 아주 최상위층의 엘리트 집단입니다. 그들은 서로 개인적으로 아주 잘 알며 의사결정 과정에 깊게 관여합니다.
쉐퍼 전 대사는 이 소수 집단을 ‘강경파’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들은 정통성을 이어가고 싶어하고, 그러기 위해 김 씨 일가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토마스 쉐퍼] 이 집단 지도체제는 정통성을 이어가고 싶어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김 씨 일가를 앞에 내세워야 하죠. 그래서 최근 몇 년이 정말 흥미로웠어요.
이들에게는 경제 발전을 통해 주민들을 잘 살게 하는 건 중요한 부분이 아니라고 그는 강조했습니다.
경제 발전을 통해 외국 사상이 북한으로 유입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오히려 두려워 하고 있다는 겁니다.
[토마스 쉐퍼] 그들은 외부로부터의 지원을 두려워합니다. 왜냐면 그들은 모든 외부의 지원은 외부 사상과 연관돼 있다고 믿고 있거든요. 외부의 사상은 북한 주민들의 정신무장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외국에서 투자를 받는 것을 위험하다고 봅니다.
그들은 모든 나라, 특히 미국, 한국, 중국의 경제적 지원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과거 한국 정부가 추진했던) 햇볕정책도 그들에게는 매력적이지 않습니다. 이것들이 주는 장점보다 정권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해로움이 더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쉐퍼 전 대사는 수면 아래 머물던 북한 권력 핵심 내 강경파의 움직임이 김정일 국방위원장 집권 후반에 수면 위로 부상했다고 지적했습니다.
[토마스 쉐퍼] 제가 평양에서 2007년 처음 경험한 일화를 이야기하자면, 독일을 포함한 몇몇 나라가 북한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을 논의하고 있었습니다. 당 기관지도 그 인도주의적 지원을 한 외국인 기부자들에게 고맙다고 밝혔죠. 하지만 그와 동시에 같은 신문에서 ‘이 지원은 인도주의적 지원이 아니었고 외부 사상을 유입하기 위한 시도였다’는 기사가 실렸죠. 이 도움을 북한 정권을 불안정하게 만들려는 분열책이라고 묘사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당시 일화는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권력층 사이에 대외정책을 둘러싼 이견이 있었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다른 일화도 있었습니다. 2007년 두 번째 남북 정상회담이 열렸는데, 그 정상회담에서 한국의 대북투자 제안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동의했고 이 사실은 당 기관지에 실렸습니다. 하지만 몇 달 후, 이를 뒤집는 기사가 같은 신문에 실립니다.
[토마스 쉐퍼] 2007년, 두번째 남북 정상회담이 있었어요. 김정일(국방위원장)과 그 당시 (노무현) 한국 대통령 사이에 말이죠. 그 정상회담에서 한국 민간기업의 대북 투자가 제안됐고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이 제안에 동의했습니다. 이후 관련 논의가 있었고 외국 투자의 장점에 대해 당 기관지가 기사를 실었습니다. …, (하지만) 2008년 새해 기사에서는 외국 투자는 바람직하지 않으며 논의되지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몇 달 전 김정일(국방위원장)은 투자에 동의했지만 나중에 후퇴한 거죠. 아주 흥미로웠습니다.
쉐퍼 전 대사는 이후 이듬해 2008년 여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뇌졸중으로 쓰러지면서 신체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그의 권력이 약화됐다고 지적했습니다.
김 위원장으로선 빨리 후계자를 내세워야 했고, 그 대가는 정치적 지형 변화였습니다.
[토마스 쉐퍼]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군부와 소수 엘리트 집단은 김정은을 후계자로 세우는 데 동의했습니다. 우리는 2009년에 알았지만 이러한 결정은 2008년 후반부터 진행됐습니다. 하지만 이를 진행시키기 위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대가를 치러야 했습니다.
이것은 국내 정치 지형은 물론 대외정책, 대남정책, 그리고 경제정책에서도 변화를 불러왔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그의 아들을 후계자로 임명하기 위해 이러한 거래에 동의했다는 사실이 명확했습니다.
군부를 중심으로 소수 엘리트 강경파를 상대로 한 정치적 거래 과정을 거쳐 탄생한 김정은 정권.
쉐퍼 전 대사는 김 총비서와 10미터 정도 떨어진 자리에 앉게 됐을 때 가졌던 느낌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토마스 쉐퍼] 한 행사에서 그와10~15m떨어진 가까운 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2013년 혹은 2014년이었을 거에요. 데니스 로드먼이 북한을 방문해 경기를 하는 자리였죠. 김정은 (총비서)은 그 농구경기를 보는 자체로 아주 행복해 했어요. 그것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죠. ‘그가 이 (최고지도자) 자리에 있길 원하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조금 더 단순한 삶을 살 수 있었잖아요? 하지만 그의 선택과는 관계없이 그의 부모에 의해 이 자리에 놓여진 거죠.
[RFA 특집, 북한 통치체제의 실상] ① 김정은 세습과 권력지형 변화
② 엘리트 강경파에 포위된 김정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직전과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 집권 직후 등 두 차례에 걸쳐 10년 가까이 평양에서 북한의 권력지형 변화를 직접 목격했던 쉐퍼 전 대사로부터 듣는 [RFA 특집, 북한 통치체제의 실상]
김정일의 사망 그리고 김정은의 고투
쉐퍼 전 대사는 2011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갑작스레 사망한 후 북한 내에서 또 급격한 정치적 지형 변화가 있었다고 말합니다.
[토마스 쉐퍼] 우리는 또 다른 정치적 지형 변화를 목격했습니다. 정책이 다시 강경해졌어요. 국내 정책, 한국, 경제, 핵 정책 모두 강화됐습니다. 그 때 저에게는 꽤 명확했죠. 이러한 변화가 김정은(총비서)에게서 나오는 게 아니라 다른 결정권자들에게서 온다는 것을 김정은 집권 초기의 몇몇 중요한 사건을 통해 알아차렸습니다.
그는 이런 권력다툼 과정에서, 김정은 총비서의 역할은 미미했다고 회상합니다.
[토마스 쉐퍼] 그 때 우리는 모든 사건과 상황을 꼼꼼히 분석했고 그 시절 김정은(총비서)이 권력다툼에서 두드러진 역할이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예를 들어 한 기관은 다른 기관과 정반대로 행동했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김정은은 어떠한 (조정) 역할도 하지 못했어요. 이것은 꽤 명확했습니다. 모든 것이 결정되고, 그는 강경파들의 결정에 동의하곤 했죠.
쉐퍼 전 대사는 이러한 권력다툼(power struggle)이 김정은 총비서 집권 뒤 2015년 말까지 관찰됐다고 지적합니다. 이후 북한의 주요 정책은 일관적으로 됐고, 그는 강경파들이 권력싸움에서 이긴 탓으로 해석합니다.
[토마스 쉐퍼] 저는 강경파들이 권력의 우위를 잡았고, 온건파는 옆으로 밀려났다는 결론을 내리게 됐습니다. 그(김정은)가 자신의 입지를 강화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2008년부터 2016년까지 이어진 상황을 미루어 보면 그가 절대적인 결정권자가 아니고, 권력을 나눴을 가능성이 있으며 혹은 북한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김정일은 온건파에 속해
한편 쉐퍼 전 대사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온건파에 속한다고 말합니다.
[토마스 쉐퍼] 확실하진 않지만, 그(김정일)는 확고한 의견이 없었고 망설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북한내 강경파들보다는 확실히 온건파에 속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특별경제지구인 개성과 금강산 관련 정책을 통해 엿볼 수 있듯이 남한과 경제협력을 중시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북한 내 강경파로선 이런 김 위원장의 온건 행보가 달가울리 없었다고 쉐퍼 전 대사는 지적합니다.
[토마스 쉐퍼] 2008년께 한국 여행자가 금강산에서 북한 군인의 총을 맞고 사망했습니다. 이날은 한국 대통령이 의회에서 북한에게 조금 더 부드러운 접근 방법에 관해 이야기하려고 계획한 날이었습니다.
그날 아침 북한 군인이 한국 여성에게 총을 쏜 거죠. 저는 이 사건이 남북 간 관계개선을 방해하려는 북한 내 강경파의 시도라고 생각해왔습니다.
북한에서 금강산 관광지구와 개성공업지구는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밀접한 관련이 있고 종종 그의 ‘아기’로 간주되곤 합니다. 그 만큼 그의 노력과 업적이 잘 투영된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금강산지구와 개성지구를 비판하는 건 김정일 위원장을 비판하는 것으로 간주되곤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들인 김정은 총비서가 (여동생인 김여정 부부장을 내세워) 지난해 개성공단 내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한 건 아버지의 업적을 공격한 것이란 점에서 과연 자의였을까 의심스럽다고 쉐퍼 전 대사는 지적합니다.
[토마스 쉐퍼] 2018년, 김정은(총비서)은 금강산을 방문했고, 그중 한국에 의해 지어진 호텔을 보고 “못생겼다 파괴해 버리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동생(김여정 부부장)은 2020년 개성공단을 파괴하겠다고 협박을 했죠. 2주 뒤, 그들은 개성공단 내 남북연락사무소를 결국 폭파시켰습니다.
김정일(위원장)의 자식들은 그들의 아버지의 업적을 지속하고 싶어하지 않겠어요? 그들이 가진 유일한 (정치적) 자산이잖아요. 김일성-김정일로 이어온 가족 정통성 말이죠. 개인적으로 아버지의 업적을 공격하는 것은 그들 자신의 권력을 약화시키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김정은(총비서)과 김여정(부부장)의 이같은 행보가 그들이 원해서 한 것이 아닌 지도부가 원하는 방향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쉐퍼 전 대사는 2013년 김 총비서가 들고 나온 경제∙핵 병진노선 역시 강경파의 입김이 작용한 결과라는 얘기를 북한 관료들에게 직접 들었다고 털어놓습니다.
[토마스 쉐퍼] 많은 사람들이 초반에는 이 정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왜냐하면 군사적인 부분보다 경제 발전을 우선시하는 정책으로 보였거든요. 하지만 나중에 북한 관료들과 병진정책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는데요, 그들은 이 정책은 군사력을 오히려 더 강화시키는 정책이라고 저에게 말해줬습니다. 더 많은 돈이 군사력 강화에 들어가는 거였죠. 병진정책은 강경파에서 나온 정책이라는 거죠.
그는 최근 급격한 몸무게 감량으로 불거진 김정은 총비서의 건강 이상설과 관련해서도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소수 엘리트층의 권력 유지 시도가 엿보인다고 말합니다.
[토마스 쉐퍼] 김정은(총비서)의 건강상태가 좋지 않은 건 명확해 보입니다. 그가 심각한 병에 걸렸는지 알 수는 없지만 북한 노동당은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북한의 집단지도체제는 정통성을 이어가고 싶어합니다. 정통성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김씨 일가를 앞에 내세워야 하죠. 그래서 최근 몇 년이 정말 흥미로웠어요. 유럽에서 수십 년 동안 대사로 활동하고 있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이복형제를 평양으로 다시 불렀어요. 제 생각엔 그들은 만약의 상황을 대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정확히는 모르겠어요 김정은(총비서)이 심각한 건강이상을 보이고 있는지 아닌지 말이죠.
남겨진 과제, 대북 정책의 방향성
쉐퍼 전 대사는 나아가 남북관계 그리고 핵 문제 관련 협상에서 가장 큰 진전을 이뤘을 때를 되짚어 본다면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이라고 회상합니다.
[토마스 쉐퍼] 우리가 남북관계를 이야기 하거나 핵문제 협상 진전을 이루는 것을 이야기한다면, 가장 좋은 진전을 보인 것은 김정일 정권 때입니다. 평양의 온건파들은 항상 국제사회와 협력하기를 원해왔습니다, 강경파보다 말이죠.
그는 현재 강경파가 북한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며 국제 사회가 그들의 정치적 목적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합니다.
[토마스 쉐퍼] 강경파들의 정치적 목적은 아주 강력합니다. 그들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북한정권의 안정과 한반도 통일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서울과 워싱턴의 동맹을 약화 시켜야 하죠.
보통 북한이 정권의 안정을 위해 핵무기를 원한다고 간주하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라고 그는 말합니다.
북한은 핵무기를 정치적 도구로 보고 있으며, 한미동맹을 약화시키는데 사용하고 싶어한다는 겁니다.
[토마스 쉐퍼] 북한은 핵무기를 정치적 도구(political instrument)로 봅니다. 미군을 한국에서 내쫓기 위한 수단으로 말이죠. 그들은 핵무기를 미국과 한국의 동맹을 약화시키는데 사용하고 싶어해요. 아주 공격적인 목적이죠.
그는 이 때문에, 북한과 협상을 위해서는 평양의 권력 변화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토마스 쉐퍼] 더 많은 온건파가 권력을 쥐고 있어야 (핵 협상에) 조금 더 열린 입장을 가지고 있겠죠. 이러한 것이 전제로 이뤄져야 북한과 핵 협상, 그리고 정책 완화가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RFA 특집, 북한 통치체제의 실상] ② 엘리트 강경파에 포위된 김정은
③ 공개처형∙강제동원 ‘여전’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직전과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 집권 직후 등 두 차례에 걸쳐 10년 가까이 평양에서 북한의 권력지형 변화를 직접 목격했던 쉐퍼 전 대사로부터 듣는 [RFA 특집, 북한 통치체제의 실상]
빈곤∙궁핍∙억압
[토마스 쉐퍼] 북한의 첫인상은 부정적이었습니다. 가난, 비참, 그리고 억압이 첫인상이었어요.
1980년대를 중국에서 지냈던 토마스 쉐퍼 전 북한 주재 독일 대사는 2007년 평양에 첫 발을 내딛었던 순간 1980년대 당시 중국보다 더 낙후됐었다고 느낍니다.
이 후 그가 2차례 평양에 머문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북한 주민들의 생활 환경은 크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토마스 쉐퍼] 김정일 집권 마지막 몇 년 동안 평양 시민들의 물질적인 생활수준은 조금 나아졌지만, 시골의 생활 수준은 큰 변화가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김정은 총비서가 집권하면서 외부정보 유입에 대한 단속이 한층 강화 됐다고 말합니다.
[토마스 쉐퍼] 북한에 살아도 (외보정보유입과 관련된 것은) 알아차리고 수치화하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특히 정권이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면 말이죠. 김정은 (총비서)이 집권을 시작하면서 단속이 더 심해졌습니다. 북한에 외부 정보가 들어오고 있다는 점은 알고 있지만 증가했는지 혹은 감소했는지 잘 모르겠군요. 하지만 장기적으로 외부정보는 북한 내로 많이 유입이 될 걸로 봅니다. 중국 그리고 한국과 경제 격차가 계속해서 커지는 만큼 정보유입이 계속되는 것이 미래의 북한 정권에는 더 큰 문제가 되겠죠.
쉐퍼 전 대사는 평양에 머물 때 북한 고위 관료들과 대화를 통해 베일에 쌓인 북한의 정치체제를 엿볼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가 최근 펴낸 책, ‘김정일에서 김정은까지: 강경파는 어떻게 득세했나 (From Kim Jong Il to Kim Jong Un: How the Hardliners Prevailed)’는 그 결과물입니다.

[토마스 쉐퍼] 수 년을 북한에서 보내며 북한 관료들과 수없이 많은 대화를 나눈 후 느끼는 바가 있었고, 제 경험이 북한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유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북한에 대한 몇몇 인식은 분명히 잘못됐습니다. 하지만 보통 알아차리지 못하고 넘어가죠. 외부에서 북한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북한 주민들과 직접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없잖아요. 기회가 있더라도 짧게 한 두 번 혹은 하루 대화하는게 다겠죠. 북한 주민들과 대화하고, 질문하고, 논쟁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경험한 사람들만이 북한 정책의 이면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북한 관료들도 ‘피해자’
쉐퍼 대사는 아내와 함께 평양 내 외국인들이 모여 사는 외교단지에 머물렀습니다.
[토마스 쉐퍼]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었어요. 하지만 평양에서의 생활은 조금 지루했습니다. 문화적인 부분에서 통제돼 있었고 북한 주민들에게 접근하는 것은 조금 제한이 있었죠. 외국인 사회는 아주 작았고 말이죠. 일상생활은 소소했고 궁핍했지만, 북한 주민들과 비교하면 몇 천 배 나은 상황이었겠죠?
일상생활에서의 어려움도 있었지만, 북한 체제를 이해해야 하는 점이 특히 어려웠고 그 중에서도 주민들의 고통을 직접 지켜보는 건 고역이었습니다.
[토마스 쉐퍼] 시간이 갈수록 더 크게 와 닿았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그들이 겪는) 어려움을 더 이해했고 억압이 느껴졌어요. 마음이 아팠습니다.
쉐퍼 전 대사는 이런 감정을 북한 주민들을 넘어 관료들에게도 느끼게 됐다고 말합니다.
[토마스 쉐퍼] 모두에게 적용되죠. 북한 관리들과 대화를 나누곤 하면 그들은 북한 당국의 입장을 말해주죠. 저는 그들이 이 문제있는 체제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도 피해자라고 느꼈어요. 그들은 단지 그런 삶을 살 수밖에 없는 가족에서 태어난 거잖아요. 북한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받아들여만 합니다. 그들의 선택이 아니고 그냥 그 상황에 놓여진 거죠.
그는 북한 고위 관료와 만남에서 겪은 경험을 털어놓습니다.
[토마스 쉐퍼] 하루는 북한의 아주 고위 관료와 대화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꽤 나이가 있었습니다. 저는 북한 사람들과 대화할 때도 저의 의견을 솔직히 말하고 대화하는 편이었어요. 그 대화가 끝나고 다른 북한 관료가 제가 말할 때 조금 조심할 수 있냐고 물어봤어요.
당시 그의 머리를 스친 건 대화 내내 긴장감이 역력했던 그들의 표정이었습니다.
[토마스 쉐퍼] 제가 질문을 할 때면 그들은 굉장히 긴장한 것처럼 보였어요. 잘 못 대답할 까봐 겁먹었던 거죠. 그렇게 된다면 심각한 상황에 직면할 테니까요. 처음에는 ‘어려운 질문을 못하게 하려는 건가?’ 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상대방이 곤혹스러운 상황이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됐죠.
그는 북한의 관료들 역시 북한 체제의 ‘피해자’라고 여기게 됐습니다.
[토마스 쉐퍼] 그래서 모든 사람이 피해자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개인적으로 그들을 좋아하게 됐고, 보통의 상황이라면 우리는 친구가 됐겠죠?
광장에서의 공개 사형 집행 그리고 한밤 중 아이들의 연습
쉐퍼 전 대사는 북한에 지내며 가장 기억에 남는 일화를 묻자 잠시 고민한 뒤 어렵게 말을 꺼냅니다.
[토마스 쉐퍼] 차를 타고 중국에서 평양으로 돌아오던 날이 기억이 나네요. 여느 때와 같이 차로 평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는데, 한 작은 마을을 지나가야 하는데 진입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입구가 열릴 때까지 기다려야 했죠. 지나가던 사람을 붙잡고 왜 도로가 막혔는지 물어봤습니다. 광장에서 누군가 사형을 당하고 있다고 말해줬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30분 정도를 기다려야 했죠. 시내에서 돌아오는 길에 사람들을 봤는데 그들은 말이 없고 가라앉아 보였어요. 사형집행을 직접 보진 않았지만 이 일화를 잊을 수가 없네요.
그는 폭우가 쏟아지던 한 여름 밤, 군중들의 고함소리에 잠에서 깬 뒤 아내와 함께 소리를 쫓아 걸어갔던 경험도 털어놓습니다.
[토마스 쉐퍼] 김일성 광장에 도착했어요. 10-12살 사이의 아이들이 훈련을 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비가 아주 많이 오고 있었죠. 한 사람이 아이들에게 소리를 지르며 훈련을 지시하고 있었어요. 그 공간에 즐거움은 없었습니다. 아이들은 매우 지치고 피곤해 보였습니다. 한 소녀가 있었는데, 비가 오는 상황에서 풀 위에 옷을 깔고 자고 있었습니다. 지치고 피곤해 보였어요. 이 장면이 아주 인상에 깊어요. 아주 추악한 행위잖아요. 한밤중에 아이들을 혹사시키는….
마을 광장에서 공개적으로 집행되는 사형, 한밤 중 훈련을 강요 받는 아이들.
북한 당국의 인권유린 현장을 본 그 순간을 쉐퍼 전 대사는 여전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토마스 쉐퍼] 북한에 있으며 만난 사람들을 많이 생각하곤 합니다. 그들을 지지하며 그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알 수 없다는 사실에 굉장히 슬픕니다.
[RFA 특집, 북한 통치체제의 실상] ③ 공개처형∙강제동원 ‘여전’
관련 뉴스
전 주북 독일 대사 “시간 갈수록 북 상황 어려워질 것” | RFA 2021.05.10
중국 단동 평양고려식당 문란행위로 폐쇄 위기 | RFA 2021.0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