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사우스다코타 주 러시모어산의 조각상
1927년 제작 시작, 1941년 완성된 러시모어 산 조각상
조지 워싱턴, 토머스 제퍼슨, 에이브러햄 링컨, 시어도어 루즈벨트

토머스 제퍼슨이 기초한 미국 독립선언문이다.
선언문은 상당히 긴데 그중에서도 역사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부분은 다음 구절들이다.

우리들은 다음과 같은 것을 자명한 진리라고 생각한다.
즉,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으며, 조물주는 몇 개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했고, 그 권리 중에는 생명과 자유와 행복의 추구가 있다.
이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인류는 정부를 조직했으며, 이 정부의 정당한 권력은 인민의 동의로부터 나온다.

또 어떠한 형태의 정부이든 이러한 목적을 파괴할 때에는 언제든지 정부를 변혁 내지 폐지하여 인민의 안전과 행복을 가장 효과적으로 가져올 수 있는, 그러한 원칙에 기초를 두고 그러한 형태로 기구를 갖춘 새로운 정부를 조직하는 것은 인민의 권리이다.

진실로 인간의 심려는 오랜 역사를 가진 정부를 천박하고도 일시적인 원인으로 변경해서는 안 된다는 것.
인간에게는 악폐를 참을 수 있는 데까지는 참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줄 것이다.

그러나 오랫동안에 걸친 학대와 착취가 변함없이 동일한 목적을 추구하고 인민을 절대 전제 정치 밑에 예속시키려는 계획을 분명히 했을 때에는, 이와 같은 정부를 타도하고 미래의 안전을 위해 새로운 보호자를 마련하는 것은 그들의 권리이며 또한 의무이다.

이와 같은 것이 지금까지 식민지가 견디어 온 고통이었고, 이제 종래의 정부를 변혁해야 할 필요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대영제국의 현재 국왕의 역사는 악행과 착취를 되풀이한 역사이며, 그 목적은 직접 이 땅에 절대 전제 정치를 세우려는 데 있었다. 지금 이러한 사실을 밝히기 위하여 다음의 사실을 공정하게 사리를 판단하는 세계에 표명하는 바이다.

미국 독립(American Revolution)의 역사적 의의

미국 독립 과정에서도 서로 다른 정치적 경제적 이해관계를 갖는 세력들 간의 대립과 투쟁이 어김없이 등장한다. 하지만 프랑스혁명과 러시아혁명이 국내의 계급투쟁을 통한 혁명이었다면, 미국의 경우는 보스턴 차 사건에서 나타난 것처럼 식민지 모국 영국의 과도한 식민지 수탈( 당밀세, 인지세, 숙영법, 수입세 등)에 대한 반발과 저항이 기저를 이룬 식민 모국과 식민지 간의 투쟁이었다.

이것은 “대표 없이 과세 없다(no taxation without representative)”가 미국 독립전쟁이 본격적으로 개시되기 직전의 이슈이자 슬로건이었다는 것에서 알 수 있다.
그리고 식민지 입장에서 투쟁의 최종적 목표는 결국 ‘독립(independence)’이 될 수밖에 없었다.

독립선언서는 미국 인권선언의 선구라고 할 수 있는 1776년 6월 12일의 ‘버지니아 권리장전(Virginia Bill of Rights)’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영국헌법을 부정하고 그 테두리를 넘어선 ‘인간의 권리’를 선언했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라는 선언은 권리의 원천을 국왕의 하사품이 아닌 자연법(自然法)으로 상정했고, 자연권(自然權)이라는 추상적인 보편적 원리에 부합하느냐 여부에 따라 실정법의 정당성을 판단하려고 한 당시로는 가위 혁명적인 언급이었다.

더 나아가 “인간이 평등한 것은 자명한 진리라고 믿고, 생명·자유·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천부의 권리이며, 사람들은 그 권리에 걸맞은 ‘새로운 정부’를 만들 권리가 있다”라고 하여 인류 역사상 최초로 현재 대다수 민주주의국가의 헌법이 명시하고 있는 평등권, 생명권, 자유권, 행복추구권, 저항권 등의 기본권을 ‘선언’에 포함시키고 있다.
이런 까닭에 미국 독립선언을 근대 인권선언의 효시라고 보는 견해가 다수이다.

인류 역사상 최초의 사회주의 체제가 마르크스가 예견한 것과는 달리 가장 발전한 자본주의국가가 아닌 ‘자본주의의 가장 약한 고리’인 후진국 러시아에 세워진 것처럼, 왜 최초의 시민혁명이 근대 계몽주의 혁명사상의 산실인 프랑스가 아니라 대서양 건너 미국에서 먼저 이루어졌느냐 하는 것 또한 역사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요소이다.
아무튼 미국 혁명은 시기적으로 프랑스보다 앞서 시민혁명의 요소를 지니고 있었고, 유럽의 시민혁명 전개에 커다란 자극제가 되었다.